길을 모를 때 지도가 필요하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해서 반박할 필요조차 못 느낀다. 이 말은 경영활동에 분명한 목표를 갖는것이 왜 중요한지, 즉 비전의 역할을 암시한다. 비전을 통해 우리는 이루어야 할 것, 가야할 곳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 말은 틀렸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로부터 몰입과 헌신, 목표달성을 위한 응집력을 이끌어 내는 ‘공유된 비전’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과 복잡성을 특징으로 하는 경영환경에서 비전 설정은 늘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환경에 적응하도록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에서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한 시점에 잘못된 비전이 갖는 위험성은 더욱 심각하다. 시장과 고객은 늘 기업보다 한 발짝 앞서 있고, 고려해야 할 경영의 변수는 점점 복잡해지고,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의존되는지를 이해하기가 갈수록 더 어려운 상황에서 선형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듯 보인다. 지금 기업이 직면한 문제는 불과 10년전과 비교해도 너무 다르다. 아인슈타인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그 문제가 발생했을 때와 동일한 이해력 수준에서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오늘날 경영이 직면한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거의 3백년 동안 뉴튼에 의해 인류 전체의 상식이 되어 온 기계적 세계관이, 세상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유기적이고, 혼돈과 불확실성에서도 자기조직화를 통한 질서가 창조된다고 주창하는 양자물리학의 유기적 세계관으로 큰 도전과 변혁을 맞이한 것처럼 경영학에서도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주로 정보분석을 토대로 한 분석적 사고, 논리적 사고로 무장된 기존의 경영학적 사고가 혁신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분석적, 논리적 사고에 직관과 상상력을 통합하는 사고 프로세스로서 ‘통합적 사고’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2000년대 초 토론토대 로트만스쿨의 로저 마틴교수에 의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통합적 사고를 ‘정의되지 않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정립한 로저 마틴은 통합적 사고를 “상반되는 두 아이디어 사이의 긴장을 건설적으로 이용하여 하나를 선택하느라 다른 하나를 버리는 양자택일 방식 대신 두 아이디어의 요소를 모두 모두 포함하면서도 각 아이디어보다 뛰어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창의적 긴장을 해소하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경영에서의 의사결정은 보통 ‘트레이드 오프’ 즉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하나는 희생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과정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실제로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 중에서 현실적인 제약으로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그러나 탁월한 리더들은 이분론적인 사고를 벗어나 대안들의 장점을 통합해내는 창조적 사고능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P&G의 전회장인 A.G.래플리도 취임초기 운영 효율성 향상과 연구개발 역량 강화라는 상충하는 조직의 니즈를 통합적 사고를 통하여 극복한 경험을 갖고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했다면 우리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 트레이드 오프 게임을 벗어나지 못 하는 한 당신은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통합적 사고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이의 중요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강조하였다. 올바른 의사결정은 서로 다른 의견의 충돌에서 시작되고, 상충하는 아이디어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나온다는 드러커의 주장은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통합적으로 볼 것을 암시한다. 또한 드러커는 중요한 의사결정일수록 새로운 판단기준이 필요한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관행적인 의사결정을 경계하였다. 전통적 판단기준은 과거의 의사결정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2년 토론토대 로트만스쿨의 통합적사고 세미나 강연 중 그가 한 말은 통합적 사고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재무 의사결정이나 회계 의사결정, 혹은 마케팅 의사결정 따위는 없다. 오직 비즈니스 의사결정만 있을 뿐이다.

로저 마틴에 의해 주도된 통합적 사고는 세계적인 디자인 컨설팅사인 IDEO의 CEO인 팀브라운이 제품디자인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던 디자인 방법론과 합쳐지면서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로 발전되어 체계적인 방법론을 갖게 되었다. 당시 상황을 로저 마틴 교수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디자인적 사고의 중요한 줄기가 2003년 8월 19일 로트만스쿨의 내 사무실에서 IDEO의 팀 브라운과 나누었던 대화에서 시작된 것은 확실하다. 팀은 나에게 IDEO에서 벌어지고 있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제품디자인 회사였던 IDEO는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쓰인 디자인 방법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팀은 IDEO가 하는 일이 제품디자인에서 사용자경험 디자인으로, 그리고 나아가 경영전략 디자인의 기초단계로 점점 발전하고 있음을 관찰하고 있었다. 우리는 당시 내가 진행하고 있던, 디자인을 P&G의 핵심경쟁력으로 만드려는 컨설팅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전통적인 제품디자인적 사고로는 이제 부족하며, 제품디자인적 사고의 ‘무언가’를 가져다가 좀 더 넓은 범위의 디자인에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그 ‘무언가’를 우리는 ‘디자인적 사고’라 부르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를 가져다가 경영전략 개발과 같은 좀 더 추상적인 업무에 적용한다는 개념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P&G를 위한 디자인적 사고 프로세스를 개발했다. 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이 성과를 로트만스쿨로 가져와 로트만 디자인웍스’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들과 기업경영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한편 팀과 같이 일했던 IDEO의 데이비드 켈리는 스탠포드로 가서 흔히 d.school이라 불리는 스탠포드 디자인스쿨을 설립했다.       

경영학의 진화를 도모하는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경영 의사결정 체계를 실질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여러 대안 중 하나로 등장한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를 경영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점차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디자인적 사고는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주는 미학적관점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인지과학자 허버트 사이몬Hebert Simon’은 1969년 발행된 그의 저서 ‘인공 과학의 이해The Science of The Artificial’에서 디자인을 “기존의 상황에서 보다 바람직한 상황으로의 전환”이라는 넓은 의미로 정의하며 조직경영에 디자인의 개념을 접목할 것을 처음으로 제안하였다. 최근 산업계에서 디자인적 사고의 유행을 주도하는 디자인컨설팅사 IDEO의 데이비드 켈리는 디자인적 사고를 “소비자들이 가치 있게 평가하고 시장의 기회를 이용할 수 있으며 기술적으로 가능한 비즈니스 전략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디자이너의 감수성과 작업방식을 이용하는 사고 방식이다”라고 설명한다.

문제해결에 관하여 경영학과 디자인이 바라보는 시각은 서로 다르다. 전통적 경영학에서의 기본 가정은 여러 대안을 도출하는 것 자체는 쉽지만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고, 반면에 디자인에서의 기본 가정은 좋은 대안을 디자인하는 것은 어렵지만 일단 만들어지면 선택에 대한 의사결정은 별 것 아니다는 것이다. 디자인의 시각은 잘못된 의사결정 보다 더 나쁜 것은 더 나은 선택을 포기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문제해결 의사결정에 관한 경영학적 태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많은 경영기법과 도구들이 갖는 장점은 명확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실행가능한 대안들이 제시될 때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과학적 경영 기법이 성행하던 1950년대 이후 기업과 학계의 관심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지적은 디자인적 사고의 유용성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긍정탐구(AI)의 본산으로 잘 알려진 미 클리블랜드의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에는 피터 루이스 빌딩이라 불리는 경영대학 건물이 있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작품이다. 오랜 역사의 대학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색 벽돌 외관과 파도처럼 너울지는 형상을 한 스테인레스 지붕의 조화는 마치 급변하는 환경에서 경영학이 전통과 새로움 사이에서 어떤 조화를 이루어 나갈지를 암시하는 듯하다. 이 대학의 리처드 볼랜드교수는 이 빌딩의 설계과정에 참여하면서 ‘디자인적 사고’에 관한 충격적 경험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건물의 설계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 4,500평방피트의 건축면적이 축소되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산타모니카에 있는 프랭크 게리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그 곳의 건축가와 작업을 시작하였다. 첫번째로 한 일은 차를 끓이는 주방, 휴게실, 벽장, 창고, 복사기나 팩스가 차지하는 공간 등 없애거나 축소해도 될 만한 공간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런 공간들은 거의 강의실이나 연구실, 회의실 옆에 위치하여 나름 꼭 필요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해결책을 찾기 쉽지 않았다. 우리는 설계도를 펼쳐놓고 1층부터 5층까지 모든 공간을 재점검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작은 공간을 변경하는 일은 다른 여러 공간의 변경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수 많은 장애에 부딪혀야 했고 설계를 시작한 초기 단계로 다시 돌아가길 수 없이 반복했다. 결국 우리는 꼬박 이틀을 소비하여 해결책을 찾아냈다. 4,500평방피트나 되는 공간의 축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공간재배치를 이루어내는 일은 정말 대단한 작업이었다. 최종 설계도면이 완성된 큰 책상을 뒤로 밀면서 우리는 그 동안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일을 해냈는지에 대해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성취감에 들떠 있었다. 그때 함께 작업을 한 건축가 맷트는 완성된 설계도면을 주섬주섬 모으기 시작하더니 책상 위에 싸놓고는 도면의 한쪽 끝을 잡고 반으로 찢어 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선 찢어진 도면을 구깃구깃한 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충격이었다. 도대체 그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어안이 벙벙한 우리에게 그는 차분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건 증명됐습니다. 이제 정말 우리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보죠” 프랭크 게리의 대표작품 중 하나인 피터 루이스빌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문제해결에 관한 매우 다른 마인드셋이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 프랭크 게리 팀의 접근방식은 건축 설계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 날 가장 성공하고 존경받는 건축가 중의 하나이고, 우리와 같은 경영학 교수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디자인적 접근방식은 그들이 성공한 분명한 이유 중의 하나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볼랜드 교수와 프랭크 게리팀이 처음한 시도한 문제해결 방식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대안을 찾는 것이었다. 반면에 완성된 설계도를 쓰레기통에 던진 후 그들이 시도한 문제해결 방식은 주어진 조건을 넘어, 기존에 갇혀 있던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고 미쳐 생각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선택지를 찾는 것이었다. 경영학적 사고는 ‘거르고, 고르고, 선택하는’ 수렴적사고를 강조하는 반면에 디자인적 사고는 궁극적으로 고객에게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 ‘모든 것을 뒤집어 고려할 수 있다’는 의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확산적사고를 강조한다. 경영학적 사고는 ‘문제해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디자인적 사고는 ‘기회발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우리는 중요한 사안을 너무 쉽게 결정하고 그것에 매몰되는 것은 아닌지, 주어진 환경의 틀 안에서 가장 진보된 분석도구를 사용한다는 자만심으로 더 나은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어설픈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더 좋은 아이디어가 발견될 때 자신의 어설픈 아이디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방어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믿었던 최소 단위 원자도 쪼개지는 마당에 변경 불가능한 아이디어는 없다. 디자인적 사고, 디자인적 태도의 핵심은 ‘더 나은 방법’을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사고방식이자 태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늘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문제’와 씨름하는 기업 경영자에게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로저 마틴교수는 “비즈니스 종사자들이 디자이너를 좀 더 이해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그들 자신이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기업이 디자인적 사고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